2013년 5월 18일 토요일

[야설 ] 강간범의 변명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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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 강간범의 변명 - 2부
아침에 눈을 뜬 나는 변의를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꼬박 이틀 동안 큰 볼 일을 보지 못했던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

변기에 앉아 아랫배에 힘을 주니 밀렸던 똥이 점점 항문 쪽으로 내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

순간, 아랫배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외과의가 수술하는 날카로운 메스로 창자의 일부를 갈라놓은 것 같은 통증이었다.

그와 동시에 대변과는 다른 이물질이 함께 아래로 흐르는 듯한 느낌이 뒤따랐다.

“으음!”

하지만 오래 묵혔던 찌꺼기들이 항문을 열고 밖으로 배출되는 시원함에 나는 통증도 잊고 기쁨에 찬 신음소릴 입밖으로 토해냈다.

또 한 번의 배출이 있고 난 뒤 나는 화장지를 뜯어 밑을 닦았다.

그리고 화장지에 묻은 배설물의 흔적을 보던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니! 이게 뭐야?”

화장지엔 배설물 대신 온통 새빨간 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그 아찔한 색조에 놀란 나는 화장지를 눈앞 가까이 대고 자세히 살폈다.

‘......!’

대변은 거의 보이지 않고 핏덩어리만 시야를 가득 메우자 불현듯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설마...... 죽을 병은 아니겠지?”

나 자신에게 되묻듯 중얼거렸다.

최근 몇 년 동안 변비로 시달려 왔기 때문에 치질이 분명한 것 같은데 이렇게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보니 다른 좋지 않은 생각도 든다.

이십 중반을 살면서 이제껏 남들 다 걸리는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고 병원 신세도 져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건강체질이기 때문에 더욱 이런 현상이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도 병원이란 데를 가야 하나?”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골이 지끈지끈 쑤시는 것 같다.

그 동안 병원신세 질 일이 없어 건강보험에도 들지 않았다.

시청에 근무하지만 아직 계약직이고 정식 직원이 아니어서 지역으로 건강보험에 들어야 하는데 돈이 아까워 끝까지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이런 일이 생기다니......

돈이 아깝긴 했지만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닌 것 같아 나는 병원에 가서 간단한 검사를 받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난 뒤 나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시청으로 출근했다.

역시 사무실엔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텅 빈 사무실을 한 번 둘러 본 뒤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나자 수영이 나타났다.

“오빠. 안녕. 오늘은 나보다 먼저 출근했네?”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 하는 이 아이의 이름은 김수영.

나와 똑같은 임시 계약직으로 이번 3월 달에 시청에 들어왔다.

올 해 초 여고를 졸업한 스무 살의 꽃다운 아가씨로 외모 또한 어디에 내 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 수준급인 데다 처음 나를 본 순간부터 오빠라고 부르며 극호감을 나타내고 있다.

나 또한 나 좋다고 따르는 수영을 싫어할 리 없다. 아니 만약 인혜란 먹잇감이 없었다면 바로 수영이와 교제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내 결혼상대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학벌이야 나와 같은 고졸이니까 상관없고 얼굴과 성격은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집이 가난하다.

아버지는 죽고 홀어머니 밑에서 여동생 둘을 돌보며 살고 있다는데 아무리 봐도 장래가 없는 것이다.

반면 인혜는 명문대학 졸업에 시청 공무원, 그리고 아버지는 대기업 이사로 집도 부자다. 하루 데이트로야 수영이가 훨씬 낫겠지만 평생 동반자로는 인혜와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녀의 호감만 받고 어느 선 이상은 절대로 수영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만약 수컷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수영을 건들었다가 인혜에게 들키는 날이면 그야말로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셈이니까.

“주말은 잘 보냈니?”

내가 평소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자 잰 걸음으로 코앞까지 바짝 다가온 수영이 웬일이냐는 듯 나를 쳐다본다.

“오빠.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니. 그 반대다.”

“안 좋은 일?”

“응.”

“왜?”

“몸이 좀 불편해.”

“어디?”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망설였다.

똥구멍이 찢어져 무진장 피를 흘렸다고 말 하기가 쪽 팔린 것이다.

잠시 망설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으응. 배가 아파서.”

똥을 누면서 배가 아팠던 것은 사실이다.

“많이 아파?”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수영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녀석에게 전보다 큰 호감이 느껴진다.

“아니. 많이 아프진 않은데 검사는 받아봐야 할 것 같아.”

“그래? 오빠가 병원에 갈 생각을 하다니. 많이 아프긴 한 가 보네.”

“그래서 말인데. 이 근방에 어디 좋은 병원 없냐? 내가 이쪽으로는 워낙 무관심하게 살아서 아는 병원이 있어야지.”

“음. 배가 아프다면 내과로 가야겠는데, 여기서 조금만 가면 괜찮은 내과가 있어.”

“그래?”

나는 반색하며 수영에게 병원의 이름과 약도를 받았다.

“나. 병원에 갔다 올 테니까 수영이 네가 내 일까지 좀 처리해 주라. 혼자 하기 힘들면 휴대폰으로 연락하고.”

수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오빠는 검사나 잘 받고 오셔.”

밝게 웃는 수영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손이 그녀의 머리를 향했다.

“그럼 부탁하자.”

수영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내가 말하자 그녀가 품에 안길 듯 가깝게 몸을 붙여왔다.

‘......!’

풋풋한 처녀의 체취가 코를 찌르자 하체가 불끈 요동을 쳤지만 그와 동시에 인혜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수영의 몸을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병원은 엄청 붐볐다. 대기실 의자엔 사람들로 가득 차 앉을 자리가 없었고 여기저기 가운을 입은 간호사들이 보이는데 그 숫자도 꽤 많았다.

“우리 병원 처음이신가요?”

순서가 되어 접수대에 서니 아주 예쁘게 생긴 간호사가 생글거리며 내게 묻는다.

“예.”

여기 병원 뿐 아니라 병원이란 자체가 처음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은데 참았다.

“보험카드 주세요.”

“카드 없는 데요.”

“아. 그러면 주민등록번호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저기. 보험카드를 만들지 않았는데.”

간호사가 내 얼굴을 쳐다보는데 마치 외계인이라도 보는 양 생경한 표정이다.

나는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내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와 오히려 더 당당하게 말했다.

“카드 없으니까 그냥 일반으로 해 주세요.”

“아. 알았습니다.”

내 굳어진 얼굴을 보고 간호사는 얼른 평소의 웃는 얼굴로 돌아와 차트에 내 이름과 나이 등을 적었다.

“저쪽 3내과에 가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간호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3내과로 갔다.

그렇게 또 30분을 기다렸다.

“강철수님!”

간호사가 내 이름을 호명하자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손짓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강철수씨?”

의사가 내 이름을 부르자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예. 오늘 아침에 혈변을 보셨다고?”

차트에서 눈을 떼며 의사가 나를 향해 묻자 나는 그제야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사십 대 후반 정도나 되었을까?

반백의 머리에 잘 생긴 얼굴은 말 할 것도 없고 말하는 태도나 모든 것에 관록이 묻어 있어 그에게서 뭔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괜히 주눅이 든 나는 더듬거리며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모두 얘기했다.

“음. 환자분 말만 듣고는 진단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 내시경 검사를 하도록 합시다.”

의사의 말에 나는 돈부터 떠 올렸다.

“저기. 제 생각엔 치질 같은데요. 그래도 내시경을 해야 할 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의사가 내 얼굴을 쳐다보다 처음 사무적이던 때와 달리 조금 더 부드러운 표정으로 설명을 했다.

“나도 환자분 말씀처럼 치질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혈변으로 내원한 환자분들을 검사하다 보면 의외로 치질이 아닌 경우도 가끔 있는데 그런 사람들 대부분 심각한 병에 걸려 있는 것을 많이 봐 왔어요.”

의사의 말을 듣자 갑자기 겁이 났다.

“심각한 병이라면......?”

“소화기 계통에 발생하는 병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자세하게는 설명할 수 없지만 베쳇 병이랄지, 악성 용종 같은 것이 생겼을 수도 있고 드물지만 진행된 대장암인 경우도 꽤 경험했었죠.”

다른 것은 잘 모르겠는데 진행된 대장암이라는 말이 걸렸다.

‘암일 수도 있다고?’

이 의사가 지금 검사 받게 하려고 나를 겁주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치질이라 해도 내시경을 받아야 합니다. 치질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됐는지 봐야 하고 그 모양이나 크기에 따라서 수술을 할 것인지 아니면 약물로 치료를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내시경을 받겠습니다.”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만 나가보라고 하자 나는 다시 접수대로 갔다.

“내시경 하시기로 하셨네요?”

간호사가 여전히 생글거리며 말하는 것을 보자 나는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수면내시경으로 하실 거죠?”

“수면내시경?”

“예.”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그냥 내시경 하시면 너무 고통스러우세요. 경험해 보신 분들 말 들어보면 위내시경보다 장 내시경이 훨씬 더 고통스럽다고들 하시니까 수면으로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눈앞에서 생글거리며 말하는 간호사 앞에서 나는 더 이상 토를 달고 싶지 않아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좋습니다. 수면내시경으로 하죠.”

“마침 내일 아침에 빈 시간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부터 금식하시고, 주의사항 읽어보시고, 약 드시고, 내일 아침 9시까지 오세요.”

“알겠습니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 들고 나는 시청으로 돌아왔다.

사무실엔 전 직원이 나와서 활기차게 근무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자 왠지 나만 딴 세상에 여행을 갔다 막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먼저 인혜의 모습을 찾았다.

‘......!’

역시 자기 자리에 얌전히 앉아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이내 내 마음도 풀려 발걸음을 그녀에게로 향했다.

발소리를 죽이며 몰래 다가가 그녀 옆에 서자 그녀가 갑자기 난 인기척에 놀라 얼른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어머!”

놀라면서도 나를 보는 그녀의 얼굴에 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수영이가 그러던데. 병원 갔다면서?”

“응.”

“많이 안 좋은 거야?”

인혜의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완연하다.

그녀가 많이 걱정 할수록 그와 반대로 내 기분은 더 좋아진다.

그녀가 나를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오늘 아침에 배가 아파서 검사만 받고 왔지.”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인혜가 작게 한숨을 내 쉰다.

“후. 걱정 했잖아. 평소 건강이라면 자신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철수씨가 아프다고 병원엘 가다니.”

“하하. 인혜가 걱정해 주니까 이젠 하나도 안 아파.”

내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인혜가 질색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철수씨!”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도 내겐 기쁨으로 다가온다.

“오빠.”

문득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가왔는지 수영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응.”

내가 대꾸하자 수영이 인혜의 얼굴을 한 번 힐끗 보더니 곧바로 내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병원 잘 다녀왔어?”

“그래. 그 동안 별 일은 없었지?”

“응. 검사결과는?”

수영이 관심을 갖고 묻자 나는 먼저 인혜의 기색을 살폈다.

‘......!’

역시 수영의 나에 대한 관심이 달갑지 않은지 인혜의 얼굴은 조금 불쾌한 기색으로 변해 있었다.

수영이 진작부터 나에게 들이 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특히 수영이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교를 부리고 아양을 떨 때 더 기분 나빠 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에게는 그런 싹싹함이 없기 때문이었다.

인혜의 기색을 살피던 나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수영에게 사무적인 태도를 취했다.

“괜찮아.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갑자기 무뚝뚝하게 변한 나를 보고 수영은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본연의 쾌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국장님이 찾으셔.”

“나를?”

“응.”

수영의 말에 나는 얼른 인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국장님이 찾으신대. 가 볼게.”

인혜가 내 행동에 기분이 풀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보내왔다.



똑똑-

“들어와요.”

문을 열고 국장실로 들어가자 이병국 국장이 반색하며 나를 반겼다.

“어서 와라. 병원 갔었다며?”

“예!”

나는 먼저 공손하게 인사부터 한 뒤 그의 얼굴을 보았다.

이병국 국장.

나이는 사십에 그저 흔히 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다.

겉으로만 보면 그가 그토록 뛰어난 수재란 사실을 생각조차 할 수 없으니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평가할 게 못 된다.

“배가 아파서 잠깐 다녀왔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네가 오늘 해줘야 할 일이 생겼다.”

국장에게 있어 내 건강문제는 강 건너 불이었다.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닌 것이다.

나도 그의 이런 행동이 당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 우리집에 좀 다녀와야겠다.”

“국장님 집에요?”

“응. 집사람이 침대며 가구를 옮기는데 힘 쓸 사람이 필요하다는구나.”

“예. 당연히 제가 가야죠.”

내가 싹싹하게 말하자 국장이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줄어든 머리카락을 손으로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갈 까요?”

“뭐 급한 일이라도 있냐?”

“아닙니다. 잡다한 일이 좀 있는데 수영이가 맡아 하면 되니까 저는 언제라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가라. 집사람 말로는 할 일이 꽤 많은 것 같으니까 가서 일 보고 바로 집으로 퇴근해.”

“예.”

“참. 그리고 우리집 이사한 뒤론 못 가봤지?”

“예.”


“약도 그려줄 테니까 그 거 보고 찾아 가도록.”

“예. 국장님.”

나는 주인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충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국장이 준 약도대로 내가 찾아간 곳은 강남 도곡동에 있는 00아파트였다.

정문에 들어서자 경비원이 먼저 나에게 묻는다.

“방문하실 겁니까?”

“예. 여기 1208호 방문입니다.”

“주민등록증을 맡기세요.”

“예?”

나는 말문이 막혀 경비원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무슨 아파트 한 번 방문하는데 주민등록증까지 맡기라한단 말인가.

경비가 내 얼굴을 보며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친절한 어투로 내게 말했다.

“여기 아파트 방침이 그러니 이해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속으로 기분은 나빴지만 방침이 그런 다니 어쩔 수가 없었다.

주민등록증을 그에게 주자 그가 장부에 뭔가 기입하고 이내 인터폰을 들었다.

“네. 사모님. 알겠습니다.”

그가 통화를 마치고 나에게 말했다.

“올라가십시오. 기다리고 계셨답니다.”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일부러 드러내듯 그에게 수고하라는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그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12층에서 내린 나는 1208호를 확인하고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안에서 말소리가 들리자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재빨리 대답했다.

“국장님이 보내서 온 강철수입니다.”

“오. 잠시만 기다려요.”

반갑게 대답하는 소리와 함께 곧바로 문이 열렸다.

‘......!’

눈이 부실 정도로 예쁜 여자가 나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보내오고 있었다.

“어서 와요 철수씨.”

하마터면 넋을 잃고 쳐다볼 뻔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사모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항상 그렇지 뭐. 철수씨 한 3개월 만에 보는 건가? 더 미남 됐네.”

인사치례로 하는 말일 테지만 왠지 얼굴이 붉어진다.

내가 수줍어하자 그녀는 더 밝게 웃으며 나를 안으로 들였다.

“들어와요. 여긴 처음이죠?”

“예.”

안으로 들어와 거실을 한 번 훑어보며 내가 감탄사를 발했다.

“와. 아파트가 전에 살던 곳보다 훨씬 넓네요.”

“그렇지? 전에 살던 데는 42평인데 여긴 70평이니까.”

거실만으로도 국장의 아파트는 나 같은 서민의 기를 팍 죽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마도 아방궁이 이러했을 것이다.

족구를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넓은 공간에 가득 들어차 있는 집기들.

tv나 컴퓨터 등 가전제품들은 말할 것 없고 집기 하나하나가 전부 초호화판이었다.

그때 안에서 조그마한 강아지가 내게로 달려오며 짖어댔다.

왈왈-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폼이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캔디.”

내가 이름을 부르며 무릎을 굽히자 강아지가 꼬리를 더욱 세게 흔들며 내게로 안겨왔다.

몇 번 보지 않았지만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대견해 나는 강아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여자가 내게 말했다.

“캔디가 낯선 사람은 경계하는데 철수씨는 아주 반가워하네.”

“하하. 저번 캔디가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동물병원에 데려가 낫게 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럼. 우리 캔디. 머리가 얼마나 좋은데.”

그녀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강아지를 보자 나는 강아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서 강아지를 건네받는 순간 그녀의 손과 내 손이 아주 약간 닿았는데 그것만으로도 나는 전율을 느낄 정도로 짜릿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호호. 우리 이쁜 캔디.”

그녀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다 마침내 코에 입까지 맞춘다.

나는 그녀가 강아지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그 순간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얼굴을 마음껏 감상했다.

‘......!’

자연스럽게 쌍꺼풀이 진 커다란 눈과 오똑하게 솟은 코,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볼륨 있는 입술과 갸름한 얼굴선까지.

요즘 브라운관에서 화려하게 조명을 받는 최고 여자스타보다 절대로 뒤지지 않을 굉장한 미모의 여인이었다.

더구나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s라인의 몸매까지, 나는 이 순간 그녀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강아지가 엄청나게 부러워졌다.

이런 미녀에게 사랑의 눈길을 받는다면, 아니 입맞춤까지 받는다면 그 기분이 어떠할까? 정말 더 이상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강아지를 내려놓자 나는 얼른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내 정신 좀 봐. 손님을 앞에 두고 차도 한 잔 내놓지 않다니. 철수씨. 차 뭐 할래요?”

“아, 아닙니다.”

나는 당황하여 손까지 저으며 사양했다.

내가 무슨 손님이란 말인가? 그저 심부름을 하러 온 국장의 종놈일 뿐인 것을.

하지만 그녀는 항상 이렇게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준다.

국장의 심부름을 한다고 해서 단 한 번도 나를 무시하거나 반말을 한 적도 없고 오히려 더욱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물론 올라갈 수 없는 나무요, 그림의 떡이지만 말이다.

“아! 철수씨 많이 바쁜데 부탁을 한 건가? 일 마치고 빨리 가봐야 해요?”

“아닙니다. 국장님이 여기 일 마치면 바로 퇴근해도 된다고 하셨으니까 오늘은 시간이 아주 많습니다.”

“그럼 됐네. 천천히 차도 마시고 점심도 먹고 여유 있게 일하다 가요. 네?”

마지막은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어리광이라도 부리듯 말하는데 그만 심장이 녹아버릴 것 같아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네. 알겠습니다.”

“뭐 할래요? 차 종류는 많으니까 마시고 싶은 거 있음 얘기해요.”

“그냥 커피 마시겠습니다.”

“네에. 곧 준비하겠습니다.”

마치 커피전문점에서 알바하는 여학생이 서빙하는 제스처로 그녀가 꾸벅 인사까지 하고 주방으로 가자 나는 그녀에게 더욱 호감이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비록 농담식이지만 자신을 낮춰가면서 하는 그녀의 이런 행동들 모두는 내 자존심을 세워주려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국장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국장이었지만 나에겐 젊음과 건강이 있었기에 그와 비교 같은 것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저 멋진 여자를 보니 그녀와 함께 살을 부비고 살아가는 국장이 부러워진 것이다.

그리고 국장에 비해 여자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장과 8살 차이가 지니까 그녀의 나이는 이제 32살이다.

나보다 6년 연상이지만 워낙 예뻐서 그런지 30대로는 절대로 보이지 않았고 나랑 같이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나와 동갑쯤으로 볼 것이다.

“크림하고 설탕은 어떻게 할 까요?”

여자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묻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달게 마시는 편이라서 둘 다 좀 많이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네.”

여자가 건네 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 정말 향과 맛이 일품이네요.”

내가 감탄사를 발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우리집에 있는 것 중 제일 좋은 커피로 준비했으니까.”

‘......!’

말없이 웃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은 그녀에 대한 감사가 절로 넘쳐흘렀다.

나 같은 놈이 뭐라고 이토록 배려해 주는 걸까.

그냥 국장이 나를 대하듯 개무시해도 내 입장에선 전혀 불평할 수 없는 처지인데 말이다.

나는 그녀에 대한 감사를 일로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오늘 할 일이 뭔 가요?”

“아이. 시간 많다면서. 커피 마시고 좀 쉬었다 천천히 해요.”

사모님이 나를 향해 눈웃음을 치는데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려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여자가 내게 일감에 대해 말했다.

“먼저 안방에 있는 침대와 서랍장을 좀 옮겨야겠어요. 이사할 때 포장이사에 모두 맡겼는데 아무래도 위치가 마음에 안 들어요.”

“예.”

그녀의 안내를 받아 나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 역시 침대며 옷장, 서랍장, 화장대등 집기들이 많았고 하나같이 고가품들이었지만 공간이 넓어서 좁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겨울이라 침대를 빛이 들어오는 쪽, 이쪽으로 놓고 서랍장은 이쪽, 화장대는 이쪽으로 놓고 싶은데 철수씨 생각은 어때요?”

내 생각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만 나는 성의껏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사모님이 환하게 웃자 나도 따라서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도 좀 거들 게요.”

그녀가 도우려하자 나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그녀를 밀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사모님이 도우시면 오히려 방해만 되니까 거실에서 쉬고 계십시오.”

“그래도. 침대나 서랍장이 꽤 무거울 텐데.”

“하하. 다 요령이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일 보세요.”

내가 자신있게 말하자 그녀가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안방을 나갔다.

나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킹사이즈의 넓은 침대를 먼저 옮겼고 그 다음은 서랍장이었다.

서랍장을 옮기고 나자 그녀가 점심을 시켜주었다.

중국집에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은 다음에 나는 나머지 일을 마무리 지었다.

“고마워요. 무거운 것들인데 허리 안 아파요?”

사실 힘들고 허리도 아팠다.

하지만 그녀가 예쁜 얼굴에 미안한 표정을 가득 담아 말하자 내 몸은 금방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하하. 괜찮습니다. 젊디 젊은 놈이 이런 것 하나도 못하면 안 되죠. 또 다른 일 없습니까?”

그러자 여자가 머뭇거린다.

“서재에 있는 책장도 좀 옮겨야 하는데.”

“그렇습니까? 서재로 안내해 주세요.”

내가 전혀 싫은 기색하지 않고 웃으며 말하자 사모님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나를 서재로 안내했다.

서재엔 다섯 개의 책장이 있었고 그 책장마다 수많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왠지 부조화스럽지 않아요?”

그녀가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드는군요.”

“그렇죠?”

“예. 하지만 나는 미적 감각이 없어 어떻게 배치를 하면 좋을지 모르겠으니까 사모님이 제게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나는 이미 그녀가 책장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미리 선수를 쳐서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먼저 옮기겠다는 말을 하자 그녀는 구체적으로 책장의 위치를 잡아주었다.

나는 그때부터 책장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이번 일은 안방보다 더욱 힘이 들었다.

책장도 큰 데다 책들이 다 꽂혀있었기 때문에 무게를 줄이려면 책을 모두 책장에서 빼 놓고 옮겨야했고 그 다음에 책을 원래대로 꽂아놓아야 책장 하나가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다섯 번이나 해야 했으니까 반복되는 단순노동의 고통이 마지막 책장을 끝낼 즈음에 나를 완전히 기진하게 만들었다.

“아휴. 철수씨. 얼굴에 땀 좀 봐.”

일을 모두 마치고 거실로 나가자 사모님이 내 얼굴을 보고 놀라 소리친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내 몸과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돼 있는 상태였다.

농땡이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한 결과였고 그것이 그녀에게 무척 미안함을 안겨주었나 보다.

“안 되겠어요. 얼른 화장실로 가서 샤워해요.”

“아, 아닙니다. 집에 가서 하면 됩니다.”

내가 사양했지만 사모님은 강하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대로 밖에 나가면 감기 걸려요. 샤워하고 몸 좀 식히고 가도록 해요.”

그녀가 내 손목을 잡고 끌자 나는 당황하여 그냥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손에 잡힌 손목에 온 신경을 쓰며 걷다보니 어느새 화장실 앞이었다.

“얼른 들어가서 샤워해요.”

그녀가 손목을 놔주고 대신 내 등을 떠밀자 나는 어쩔 수없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땀에 젖은 옷들을 모두 벗고 알몸이 된 나는 우선 거울 앞에 섰다.

‘......!’

군살 하나 없는 근육질 몸매를 보자 갑자기 자신감이 솟았다.

‘그래. 아직은 이렇게 젊고 건강한 몸이 있으니까 살만한 인생인 거야.’

샤워기를 틀고 물줄기를 맞다가 내친 김에 비누칠까지 할 요량으로 샤워기 중간에 놓인 비누를 집어 들었다.

먼저 머리를 감은 뒤 온 몸에 비누칠을 했다.

특히 자지와 부랄 두 쪽에 신경을 써서 문지르자 자지가 튀어 올라 위용을 자랑한다.

어제 인혜의 도움으로 한 번 배출을 시켰지만 젊은 육체는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고 분출대상을 찾아 꺼떡거리고 있었다.

쏴아-

물을 틀어 자지를 씻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물소리 때문에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사모님이 새 속옷을 가져다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순간 짓궂은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나는 얼른 쏟아지는 물줄기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자지는 문쪽으로 향하게 하고 열심히 얼굴을 물로 씻었다.

잠시 후 내 의도대로 문이 열리고 사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물론 나는 머리에 물을 맞으면서 실눈을 뜨고 몰래 보고 있었다.

사모님의 시선이 내 상체에 잠깐 머물다 곧바로 아래로 향하더니 내 자지를 보았다.

나는 일부러 동작을 크게 하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샤워에 여념이 없는 척 했다.

내 자지를 보던 사모님의 두 눈이 크게 떠지며 입이 벌어지는 것이 내 눈에 분명히 보였다.

순간 짜릿한 기분이 내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자지도 주인의 기분을 따라 흥분하며 점점 위로 올라갔다.

사모님은 목석처럼 굳어져 그 모습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보고 있었다.

‘여기까지다.’

나는 그 이상 진행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푸드득-

머리를 한 번 세차게 털고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른 뒤 눈을 떠 사모님을 보았다.

‘......!’

두 사람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자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자지를 두 손으로 가렸다.

“사모님.”

“아. 속옷을 주려고 노크 했는데. 철수씨가 못 들었나 봐요.”

사모님도 얼굴이 붉어지며 황급히 말한다.

“아. 물소리 때문에 못 들었습니다.”

“여기 놓고 갈 테니까 갈아입어요. 새것이니까 괜찮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사모님은 느릿하게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아 비눗물을 완전히 제거하며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나가기 전에 시선을 아래로 돌려 내 몸을 흘낏, 보던 그녀의 홍조 띈 얼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목줄을 쥐고 있는 이병국 국장의 와이프다. 그런 그녀를 상대로 어찌 보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을 감행했는데 그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병국 국장.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부류의 인물.

태어나면서부터 재벌집 아들로 태어났고 탁월한 머리로 젊은 나이에 입신양명한 수재이다. 남들은 평생을 노력해도 될까 말까한 직위를 벌써 사십에 이루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전도가 양양해 서울시장은 물론 대권까지 노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인물인 것이다.

나와는 비교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지만 한 가지 나보다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물건의 크기였다.

국장의 종이며 때밀이기도 한 나였기에 수시로 사우나에 들르는 국장을 따라 같이 들어가 그의 몸을 닦아주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본 것인데 그의 자지는 불쌍할 정도로 작아서 내 우람한 것과는 말 할 것도 없고 다른 일반적인 사이즈에도 훨씬 못 미치는 크기였다.

때를 밀다보면 가끔 그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인지 자지가 발기할 경우도 있었다.

그때도 보면 내 자지가 죽어 있을 때보다 작았고 전체적으로 내 절반에 못 미치는 크기였던 것이다.

거기에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고 운동은 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빈약한 그의 몸매는 볼품이 없었다.

한 마디로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있을 때라면 내가 국장보다 훨씬 우위에 서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 사모님에게 한 행동도 이런 맥락이다.

내가 국장보다 한 가지는 잘난 것이 있다고 과시할 목적, 그 외에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마친 나는 사모님이 준비해 둔 속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거실에 사모님이 보이지 않자 나는 바닥에 앉아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가 안방에서 나왔다.

‘......!’

그녀가 샤워를 하기 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옷을 바꿔 입었는데 조금 전에는 목까지 올라온 셔츠를 입었지만 지금은 목에서부터 가슴까지 파인 브이형 스웨터를 입고 나왔다. 당연히 학처럼 우아한 목과 가슴 일부가 맨살로 노출이 되었다.

마치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런 옷을 입은 것 같아 나는 갑자기 목이 타는 느낌이 들었고 그녀에게 물을 청했다.

“사모님. 저 물 한 잔만 주시겠습니까?”

“예. 잠시만요.”

그녀가 생긋, 웃으며 부엌으로 가는데 마치 내 속마음을 알아채고 웃음을 짓는 것 같아 가슴이 뜨끔거렸다.

“자. 마셔요.”

그녀가 물잔을 내 앞으로 내려놓는데 몸을 숙인 탓에 옷깃이 살짝 벌어지며 가슴이 더욱 많이 노출되었다.

‘아우. 이거 일부러 그러시나?’

눈을 둘 곳이 없어 민망한 기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평소에 정숙한 모습만 봐 오다 그녀의 이런 야한 차림을 보자 어찌 행동해야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당황한 내 모습을 보며 그녀가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일어나 한쪽 방으로 들어갔다.

한숨을 돌린 나는 목이 타서 물을 단번에 마셔버렸다.

잠시 기다리자 그녀가 방에서 나오며 뭔가를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세요.”

“이게 뭔가요?”

“이거 양주 발렌타인 21년산이에요. 아주 비싼 것은 아니지만 마실 만 할 거예요.”

“아니. 이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주춤거리자 그녀는 아예 내 손을 잡고 강제로 박스를 안겨준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의 손이 닿았고 이번엔 그녀가 꽤 오랫동안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손을 떼며 말했다.

“우리집에서 이 정도 술은 아주 싼 거예요. 내 맘 같아선 30년산을 주고 싶은데 그것은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개수까지 다 챙기고 있어 못주겠네.”

“아, 아닙니다. 이것도 저에겐 너무 과분합니다.”

더 이상 사양하다간 30년산을 줄 것 같아 나는 어쩔 수없이 그녀가 건네는 것을 받았다.

“사모님. 오늘 일 한 것보다 받아가는 것이 더 커서 다음에 또 오기가 부담스럽습니다.”

내가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철수씨가 힘이 워낙 좋아서 빨리 마친 거지, 만약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겼다간 해가 져도 다 못했을 걸요? 그리고 내 물건을 모르는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도 싫은데 이렇게 믿음직한 철수씨가 일을 해주니 난 너무 좋고 고마워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다음엔 이런 거 주시지 말고 그냥 편하게 일 시키세요. 사모님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전 뭐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웃었다.

“알았어요. 그리고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파트를 나와 고시원으로 가는데 발걸음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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